"오쿠타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고"
‘오쿠다 히데오’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작가이다. 하지만 일본내에서는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 작품으로 오쿠다 히데오는 2004년 131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다소 엽기적일 수 있는 캐릭터와 다소 유쾌한 사건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이 책은 다섯가지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독특한류의 소설이다. 처음 목차만 본다면 단편들로 구성된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다섯가지 에피소드 모두 엽기적인 정신과 의사인 ‘이라부’와 상담을 하는 전문 직업인들의 이야기이다. 야쿠자, 야구선수, 공중곡예 단원, 작가, 엘리트 의사인 환자들과의 상담 치료과정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이 환자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일에서 갖게 되는 강박관념을 현실보다는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지만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과 매우 닮아있다.
이처럼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도 있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한 명씩 찾아오면서 다섯가지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며,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절묘하게 기승전결의 리듬을 타면서 ‘공중그네’라는 작품이 완성된다.
모든 병은 탐욕과 자신감 부족에서 연유된다. 쉬지 않고 여유도 없이 그리고 노력보다 더 잘 할려는 강박관념이 정신질환을 유발하고 조급성 때문에 더욱 정상적 생활과 멀어진다. 어떻게든 자신감을 찾으면 다시 즐거운 인생이 돌아온다. 이 자신감을 찾는데 정신과 의사 이라부의 행동이 우리들을 즐겁게 해준다.
‘공중그네’ 내용요약 및 분석
이 소설에 다섯 종류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리고 스스로 정신과 환자라고 생각하여 이라부종합병원에 와서 치료받는다. 모든 환자는 그 직업에서 프로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의사 이라부가 아니고 아마 환자들일 것이다. 작가는 현대인들의 쉬지 않고 일하는 심리에 대한 고발이며, 이를 치료하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본다.
이 책에는 고슴도치편- 날카로운 것만 보아도 몸이 굳어지고 땀이 바삭바삭 나온다(先端恐怖症), 공중그네- 프로곡예사 고헤이는 공중그네 곡예를 그만둘까한다, 늘 결정적인 순간 공중그네를 놓치기 때문이다. 장인의 가발- 이라부 친구인 다쓰로는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다. 늘 장인의 머리에 쓴 가발만 보면 말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3루수- 3루수 신이치는 타자가 땅볼을 치면 에러를 내거나 1루에 던지는데 받을 수 없도록 던지고있다. 연습때는 잘되나 시합만 하면 실수한다. 여류작가- 프로작가 아이코는 <내일>이라는 작품으로 스타덤에 올랐으나 책이 잘 나가지 않아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원고를 쓸 수 없고 심인성 구토증 강박증까지 왔다. 자꾸 중복 주인공 문제로 고민하고, 일상적인 말만해도 신경이 예민해진다. 소설을 그만 쓸가 생각한다. 이라부병원간호사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대답하자 " 야, 아이코를 모르나 <내일>의 작가 아이코.." 간호사는 "모르면 모르지 뭐야 환자주제에.." 속으로 말한다. 그런데 아이코는 그럼 내 책을 읽어 보아라하고 <내일>를 가져다 준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잊고있었는데, 간호사가 부른다. "아이코님 책 잘 읽었어요, 또 써주세요" 아이코는 이 한마디에 자신감을 재충전하여 재기에 성공한다.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말은 한 순간에 쓰러진 인간을 다시 일으켜세운다.
모든 환자는 하나같이 난치병 환자다. 이런 환자를 고칠때는 일단 영양제 주사로 겁을 주어 의사를 믿도록하고(비타민주사, 일명 가짜주사, 이 약효때문에 나았다는 효과를 얻도록), 의사가 그들의 직업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과 호흡하며 그들로 부터 배우면서 치료를 한다. 환자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 된 멍청한 의사로 부터 자신감을 얻게 된다. 의사의 처방인 줄 전혀 모르지만. 작가는 여류작가편 중간에 아포리즘을 말한 곳이 있다. 이 책의 모든 줄거리가 아포리즘(교훈적인 소설)이 아닌가 싶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 피실격허(避實擊虛)- 자기를 알고 남을 알고, 나의 장점으로 남의 실함을 피해서 남의 약점을 공격하면 승리한다는 뜻이다. 이라부의 치료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두들 잘난 프로다보니 기초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라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신과 의사 혹은 상담심리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치료자이다. 마음이 아픈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필수적인 우수한 자질과 인품을 두루 갖춘 신뢰성있는 전문가의 모습을 기대하는 우리의 앞에 나타난 닥터 이라부는, 당최 능력도 없어보이고 성격도 괴상하다. 이상한 목소리로 홍홍거리며 환자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기 일쑤이고, 웬만한 조폭 저리가라 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가졌으며, 환자의 일상 속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거침없이 뛰어드는 의사이다. 환자들도 처음에는 '뭐 이런 의사가 다있어'하며 한심스러워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라부를 계속 찾아가서 상담받고 치료받으며 자신의 진짜 문제를 스스로 깨닫고 극복해나갈 힘을 얻게 된다.
이라부는 겉으로 보기엔 신뢰할 만한 이상적인 정신과의사의 모습은 아니지만, 우리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는 통찰력있는 정신과의사이다. 마음의 문제는 은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의사가 '다름아닌 바로 이것이 원인이요~'라고 판단하기도 어렵거니와, 의사의 진단을 환자 스스로가 납득하고 인정하기도 쉽지 않다. 대개 환자 자신이 외면하고 억압하는 어떠한 것이 뒤틀려져 증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상으로부터 원인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그 무엇의 정체를 살며시 깨달을 수 있도록 옆에서 적절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라부가 엉터리 자세로 공중그네를 시도해봄으로써 고헤이(환자) 역시 자신의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던가, 여러가지 위험천만한 장난을 이라부가 부추기고 같이 해줌으로써 다쓰로(환자)의 마음 속 갈등을 해소하도록 하는 것 등등이다. 이라부는 스스럼없이 그들과 소통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잠시 들어가 그들 스스로의 통찰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천부적인 치료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공중그네’에 대한 나의 서평
지금의 위치와 지금의 능력이 지금의 나를 결정해 버린다. 타인의 눈에 보이는 위치와 능력이 그가 나를 평가하는 모든 잣대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고정되어 버린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 나의 삶에 대한 주도권은 나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에 대해서 언제나 신경을 써야 한다. 나의 내면의 자아와 다른 또 다른 나가 표현되고 보여진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존재에 관한 의문이나 회의는 나를 괴롭힌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 그리고 남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너무나 힘들고 옥죄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해서 병을 가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뾰족한 물건만 보면 두려워하는 야쿠자 중간보스와 칼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으면 틱 증상이 나타나는 라이벌 조직의 중간보스나, 어느 날 인가부터 번번이 추락하는 최고의 공중그네 곡예사, 장인이자 대학병원 교수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어하는 의사, 글을 쓰면서 자신이 주인공들의 직업이나 스토리가 이전에 자신이 썼다는 강박관념에 잡혀버린 소설가의 모습을 통해서 투영된 현대인들의 자화상들이다.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무턱대고 주사부터 놓는 독특한 신경과 의사 '이라부'와 무뚝뚝하고 불친절하지만 사계절내내 핫팬츠차림 으로 나타나는 엽기적인 간호사 '마유미'가 보여주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면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라부의 환자가 된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짜증나고 믿음이 가지 않는 의사이겠지만, 체면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통해 환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치유한다.
마음의 병은 원인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외면의 자아와 내면의 자아간의 갈등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병을 치유하는 것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에 의해서라야 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라는 생각에 자아를 형성해가면서 나에 대한 혼란으로 인해 생겨나는 병들로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에게 이라부는 자유로움이라는 강한 처방전을 준다. 그리고 웃음이라는 기분좋음도 바이러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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