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리뷰

영화 리뷰 러셀크로우 주연의 뷰티풀 마인드

"영화 리뷰 러셀크로우 주연의 뷰티풀 마인드"

2002년 작품인 뷰티풀마인드를 다시금 보게 되었습니다. 59회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최우수 각색상까지 4개부문을 석권한 작품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다 다소 밋밋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좋은 작품임에 틀림 없습니다. 

존 내시의 일화를 담은 영화.. 
프린스턴 대학원에 입학한 장면에서 그의 일대기는 시작되었다. 
천재성과 그에 비례하는 광기, 정신분열에 이르러 고통 받는 초라한 삶 속에서 가족, 특히 부인의 헌신에 힘입어 노벨상을 받는 위대한 수학자로 투영되기까지의 노년을 그렸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담담한 인간승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주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감동적이지도 않게 인간승리를 그리고 있는 영화가 바로 뷰티풀 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열증에 빠져서 50년 동안 헛것을 보았고, 그것과 함께 한 것이 바로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 영화는 어떻게 보면 무덤덤하다고 할 정도로 개인사에 치중하고 있다. 그래도 어설픈 영화상이기는 하지만 아카데미상에 올려질 정도가 되었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승리 이상의 무엇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면 과연 제작자가 영화를 통해 인간승리 이상의 무엇을 담으려 했을까는 파악해내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를 훨씬 재미있게, 그리고 훨씬 심도 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뷰티풀 마인드’의 내용소개 및 줄거리 요약
론 하워드가 메가폰을 잡고 레셀 크로우가 '존 내시'역을 열연한 '뷰티풀 마인드'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쓸어 일찌감치 아카데미의 다관왕이 예상 됐던 작품이다. 

괴짜 천재 존 내시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원 기숙사 유리창을 칠판 삼아 하나의 문제에만 매달린다. 그는 1949년 21살의 나이로 애덤 스미스 경제학 이론을 정면으로 뒤집는 균형이론을 발표, 학계의 스타로 떠오른다. 정부 비밀요원 윌리엄 파처는 신문과 잡지에 숨겨진 소련의 암호를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내시는 앨리샤라는 매력적인 여학생과 결혼한 뒤 암호 해독을 중단할 뜻을 비치자, 파처는 소련에게 그의 위치를 알려 위험에 빠뜨리겠다고 협박한다. 이때부터 내시는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 병원에 갇히지만 자신의 초인적인 노력과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로 재기에 성공하고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다. 

이 영화는 1998년 뉴욕타임즈 기자 실비아 네이사가 쓴 같은 이름의 전기에 토대를 두고 있으나 내용은 창작에 가깝다. 일부에서는 존 내시의 일생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이상 위의 내용들이 '뷰티풀 마인드'의 개괄적인 줄거리와 그 영화에 대한 곁가지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있어선 일부 사람들이 그토록 격찬하는 '와호장룡'은 아무런 의미 없이 다가왔고 또 뛰어난 상상력과 SF의 획기적인 성과라 말하는 '매트릭스' 또한 고루하게만 다가왔었다. 그렇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런 류의 내용들이, 큼직큼직 뚜렷이 보이고 선이 굵은 영화들은 나에게 늘 감동과 설레임 그리고 많은 다짐들로 다가온다. 

패치 아담스, 리멤버 타이탄, 에린브로크비치 등등 그리고 나에게 감동을 안겨준 '뷰티풀 마인드'... 위에서 언급한데로 혹자는 러셀 크로우등 배우들과 제작자들이 전년도에 이어 연거푸 아카데미 수상의 영광을 거두워 보고자 픽션을 너무 많이 가미했다는 혹평들을 늘어놓아 조금 아쉽긴 하였지만, 그래도 나에게 다가온 그 감동의 물결들이 너무나 커 그런 미련들도 가벼히 용서(?) 해 줄 수 있었다. 마치 진정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진정 용서가 통하는 것처럼... 

'위대한 천재 뒤에 위대한 사랑, 뷰티풀 마인드' 

나는 어쩌면 이런 사랑을 꿈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의 좌절 뒤에 나의 시련 뒤에 늘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그 누군가가 있기를, 혼자서 살기에는 너무나 삭막한 그리고 너무나 싸늘한 이 세상이라는 동네에서 내 비전과 꿈들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살다가 때론 넘어지고 쓰러질 때,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고백할 수 있는 나의 소중한 사람이 나를 일으켜 세워 줄 수 있는 그런 일들을 말이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을 정도로 그런 '용기있는 사랑'을 내 속에서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용기있는 사랑'에게 마지막에 내 눈가에 희뿌연 액체로 감동을 선사해준 시상식 장면을 재연해 주고 싶은 욕심은 너무 큰 지나친 욕심일까? 

한 가지 더 집고 싶은 내용은 나의 삶 속에서도 존 내시를 평생 쫓아다니던 허상의 동료와 그 동료의 조카는 나에게 있어서 어떤 것일는지...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지나친 명예나 물질들로 다가와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나를 질기게 쫓아다니며 괴롭고 슬프게 할지 모르겠다. 

 

‘뷰티풀 마인드’에 대한 나의 감상평
이 영화는 수 십 년간 정신분열증을 앓은 주인공이 노벨상을 받기까지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이른바 말하는 감동적인 휴먼드라마이며 인간승리의 작품이다. 한 사람의 일대기는 쓴 것을 평전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그것을 대본으로 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한 사람의 감동적인 일대기를 이 영화를 통해 보는 셈이 된다. 그런데, 영화는 예술이다. 예술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형상적으로 변형시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소재는 현실에서 취해오지만 현실과 완전히 같을 수 없으며, 같으면 그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영화가 개인의 일대기를 소재로 했다 해도 그 영화가 개인의 일대기와 같은 것으로 보고, 그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작자가 영화를 만들 때 감동적인 사실만 전달하려고 했는지와 함께 영화라는 예술 갈래가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알고 볼 필요는 없는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런 것이 있다면 그런 장치들을 이해하고 보는 것이 좀더 정확하게 영화라는 예술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여지는 것은 주인공의 현실의 세계와 수학의 세계인데, 문제는 주인공이 현실의 세계와 수학의 세계를 완전히 분리시켜 생각하고 행동한다 데 있다. 주인공은 오로지 수학만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수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만들어낸 균형이론으로 오십 년 뒤에 노벨상을 받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수학의 세계는 시간이 없는 공간만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수학의 세계에 시간은 없고 오로지 공간만이 존재한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에 수학이 있고, 주인공이 있다. 그래서 환상의 세계 속에서 주인공의 주변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공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들은 시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바로 공간만이 필요하고 공간만이 필요한 수학의 세계에 주인공은 살고 싶어한다. 그와는 반대로 주인공이 처한 현실의 세계는 시간만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함께 존재하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주인공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과 그는 서로 싫어하는 관계가 된다. 그의 자유로움은 오직 공간만이 있는 수학의 세계뿐이다. 그 속에서만 그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용납하지 않는다. 

주인공에 있어서 공간만이 있는 수학의 세계와 시간만이 있는 현실의 세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는 수학의 세계인 공간만의 세계에 머물고 싶어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존재가 그를 점점 더 수학의 세계 속으로 이끌어 간다. 파쳐는 냉전공간이 만들어낸 수학의 산물이다. 그리고 방탕한 룸메이트는 수학의 공간에 있는 또 다른 자아이다. 이 자아는 이 자아는 계속해서 주인공은 궁지로 몰아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간만이 존재하는 세상과의 단절은 점점 더 깊어진다. 조카로 등장하는 여자아이는 자신의 미래이며 현실에서의 자신의 후손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다. 이 아이 역시 주인공이 현실로 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다. 

이와는 반대로 현실의 인물들은 주인공을 공간만이 존재하는 수학의 세계에서 밖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부인은 사랑의 힘으로, 정신과 의사는 약물의 힘으로 주인공을 현실의 세계로 끌어내고 있다. 수 십 년 동안 계속된 이들의 노력은 마침내 현실이 시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사실을 주인공이 인지하도록 하는데 성공한다. 그들은 환상을 통해 나타나는 인물들이 완전한 허구라는 사실을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주입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짚어야 한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시간과 공간은 분리되어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주인공을 수학의 공간에 붙들어 두려는 세 사람이 끝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이며, 주인공에게 매우 중요한 세계다. 이것이 없으면 주인공의 존재도 없다. 이것을 현실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영화의 마무리이면서 노벨상을 받는 자리에서 주인공이 부인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 빤히 보이는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영화라는 것이 대중예술이니 만큼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사랑의 승리로 오해할 수 있도록 장치한 것은 관객의 범위를 늘려보겠다는 감독의 깊지 못한 배려에서 온 것으로 보아 좋을 것이다. 그래도 위안을 받은 것이 있다면 시상대에서 한 말보다 더 뒤에 주인공의 눈을 통해 공간 속에서만 살고 있는 세 인물이 보여지는 장면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철저하게 분리된 상태에서 인간이 어떤 삶을 살 수 있으며, 이것이 세상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를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본다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평을 써본다.